세계 교회사 100대 사건
2016.01.20 20:51

22. 강도회의와 칼체돈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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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회사 100대 사건 22

강도회의와 칼체돈공의회

2001년 7월 08일 기사.

 

독일의 벨테 신부는 『교의의 역할은 복음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알아듣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의는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를 근거로 삼아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말인즉 교리라는 것은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을 설명해 주는 것이지 그 자체가 강조돼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앙 교의를 정립한 초대교회의 공의회들을 둘러보면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차이로 인한 앙해석으로 시작된 교의논쟁들이 심심찮게 올바른 예수 이해를 위한 대화의 장이 되기보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관철하기 위한 대결의 장이 되고 있음을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아전 인수식 다툼에도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계시겠지만 사랑이라는 신앙을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정당성을 추구하기 위해 여론을 조장하고 권력의 힘을 빌리고 그로 인해 분열해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갈비에 콜라같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운이 저녁 땅거미처럼 길게 남는다.

우호적인 세력들을 등에 업고 서로를 비난하고 분열하던 또 하나의 사건이 449년 에페소와 451년 칼체돈에서 있었다. 

단성설과 강도회의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한 에페소공의회 세대이자 치릴로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콘스탄티노플의 욥 수도원장 에우티케스는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을 격렬히 반대하면서 치릴로의 단일 본성 이론을 극대화했다.

에우티케스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강조하면서 강생하신 그리스도 안에 처음에는 두 본성이 있다가 인성은 '마치 바다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다에 녹아버리 듯' 신성에 흡수되어 신성만 남는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지나친 혼합성에서 새로운 이단이 발생한 것이다.

이 단성설은 오늘날까지도 동방교회 안에서 잔존할 정도로 지역 교회를 동요 시키면서 동•서방 교회 분열의 한 원인을 제공했고 정치적으로도 동서 로마 제국간의 긴장을 초래했다.

에우티케스의 단성설 주장 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플라비아누스는 주교회의를 열어 에우티케스에게 그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으나 불응하자 그를 파문하고 수도원장직에서 해임했다. 그러나 키릴로의 후계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디오스코루스가 에우티케스를 지지하고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교리 논쟁 해결을 위한 공의회를 요구해 449년 3월 30일 치릴로가 승리한 에페소에서 공의회가 소집됐다.

그러나 이 공의회는 에우티케스 지지자들에 의해 주도돼 치릴로가 사용한 방법대로 반대파들에게 발언의 기회도 주지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교황 레오 1세가 플라비아노 총대주교에게 보내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천명한 교의교서(Tomus ad flavianum)도 낭독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플라비아누스 주교를 파문하는 동시에 에우티케스를 복직시킴으로써 서로마 제국과 교황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칼체돈공의회

레오 교황은 449년의 에페소공의회를 강도공의회라고 규정하고 플라비아누스 총대주교의 복직과 에우티케스의 단죄를 요구하며 새로운 공의회 개최를 요구했다.

때마침 테오도시우스 2세가 사망하고 정통파를 지지하는 풀케리아와 결혼한 마르치아누스가 집권하자 마르치아누스는 에페소공의회를 무효화하고 새로운 공의회의 개최를 선언했다.

이리하여 451년 10월 8일에 칼체돈에서 제4차 보편공의회가 개최됐다.

칼체돈공의회는 그때까지 개최된 교회회의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레오 교황이 훈족(흉노족)의 침입으로 참석치 못했으나 600명 이상의 주교들이 참석해 단성론을 단죄하고 양성교리를 선포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두 개의 본성은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으며 한 위격 안에 일치되어 있다"는 이 신조는 오늘날까지 그리스도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리하여 위격적 일치의 그리스도론이 확정됐다.

그러나 분리, 일치, 위격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서방교회에서는 확실한 개념이었으나 동방교회에서는 생소한 것이었다. 따라서 회기 중에 이미 심각한 분열현상이 일어났고 칼체돈공의회 이후로도 동방교회는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계속 단성설로 이해했다. 나아가 이러한 갈등은 로마와 동방 총대주교간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동방교회의 이러한 단성설 지지경향은 신앙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이어져 종교와 일치 교회와 국가를 흡수 융합 시키는 동방교회의 제국신학을 발달케했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까지 확대돼 신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을 흡수하는 신앙사고가 만연했다. 또한 공의회 결정사항 중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로마의 주교와 동등한 품위를 갖는다'는 조항을 레오 교황이 인정하지 않자 동서방 교회의 분열이 가속화됐다.

신앙의 해석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은 교회에 큰 상처를 안겨 주기도 했으나 주창자들의 신앙생활과는 별개의 상황이었다. 비록 그들이 가진 신학적 소양에 따라 단죄받고 파문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열심한 신앙인들이었다.

칼체돈은 오늘날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합쳐져 한 도시가 되었으며 공의회가 열렸던 성녀 에우페미나 성당에는 하이다르파사 기차역이 세워져 수천 수만명의 이슬람 교도들이 메카와 메디나로 순례를 떠나는 시발역이 됐다. 

▣ 그리스도의 본성과 위격에 대한 교의들

 

 

위 내용은 2000년 3월부터 가톨릭 신문사에서 기획기사 '세계 교회사 100대 사건'의 내용을 발췌하여 마리아 센터에서 재 편집하여 홈페이지에 기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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