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사 100대 사건
2015.12.10 02:19

21. 네스토리우스 이단과 에페소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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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회사 100대 사건 21

네스토리우스 이단과 에페소 공의회

2001년 7월 01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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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성당 유적  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열렸던 에페소의 성모성당 유적.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결합에 대한 신앙선언문이 작성되고 믿을교리로 선포했다. 이로써 「하느님의 어머니」칭호가 채택됐다. 

 

에페소는 바울로 사도가 3차 전도 여행 시 27개월간이나 머물며 대대적으로 선교했고 사도시대 교회들 중 가장 규모가 컸었던 공동체였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에페소에는 사도 요한과 루가의 무덤, 성모님께서 말년을 보내셨다는 성모 마리아의 집, 성 요한성당, 성모 성당 등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있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모께 봉헌된 첫 번째 성당인 에페소의 성모 성당은 성모님께서 요한 사도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옮겨와 살던 곳으로 431년 제3차 보편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가 열린 곳이다. 

그리스도론 논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인성과 신성이 결합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325년의 니체아 공의회와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하여 삼위일체론이 정리되고 난 후 교회의 최대 관심사를 표명한 것이다.

성자가 성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가 신학적으로 규명된 후에는 성자가 지닌 신성과 인성에 관한 새로운 교리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 신학적 논쟁은 오래전부터 대립해왔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사이의 불목과 투쟁으로 더욱 치열해진다.

그리스도론 논쟁은 니체아 신경의 지지파인 알렉산드리아 학파 계열 신학자들로부터 비롯됐다. 이들은 아리우스 이단을 염려하여 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서로 구분되지만 분리될 수 없다면서 하나의 본성을 강조했다.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인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 안의 인성과 신성의 구분에 중점을 두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따르면 예수께서 세상에서 행하신 모든 행적은 하느님의 행적이 되지만 안티오키아 학파에 따르면 그 행적도 신성과 인성에 따라 철저히 구분되는데 예를 들면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받으실 때 하느님으로서의 예수는 고통도 수난도 받지 않고 다만 인간 예수가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 분리는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불가분의 합일을 인정치 않는 이원론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이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 명칭 문제로 불거진 네스토리우스 사건이었다. 

네스토리우스 이단

네스토리우스는 381년 안티오키아 근처에서 페르시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안티오키아 학파 사상에 깊이 물든 인물이었다. 수도회 사제로서 뛰어난 설교로 이름이 높았던 그는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의 총애를 받아 428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된다.

네스토리우스는 주교가 되자 각종 이단들을 물리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신학논쟁을 중재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성모 신심이 고조되던 때여서 「하느님의 어머니」란 용어가 널리 사용됐는데 일부 안티오키아 학파 출신 신학자들이 성모는 인간 예수만을 낳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를 수 없고 단지 「인간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스토리우스는 논쟁의 해결책으로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성모님은 인간 예수 만을 낳으신 분이지 결코 신 예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강조된 것이었다. 네스토리우스의 이러한 주장은 즉시 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반대가 심했으며 이 반대 세력의 중심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치릴로였다.

치릴로는 첼레스티노 1세 교황에게 네스토리우스와 관련된 자료를 보내 지지를 얻어낸 다음 430년 알렉산드리아 주교회의에서 네스토리우스 가르침을 단죄하고 12개 조항의 파문조문을 네스토리우스에게 보내 그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네스토리우스는 치릴로의 주장을 반박하는 12개조항의 파문조항을 발표하고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공의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네스토리우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서로마제국의황제인 발렌시아누스 3세와 함께 공의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431년 6월 22일 성령강림 대축일에 에페소에서 공의회가 개최됐다. 

에페소 공의회

공의회는 소란스럽게 진행됐다. 네스토리우스가 관구 소속 주교 26명과 함께 먼저 도착했고 이어 치릴로가 50명의 관구 소속 주교들과 함께 도착했다. 반면 안티오키아의 요한 총대주교 일행과 로마 교황사절단은 미처 도착하지 못했다.

그러나 치릴로는 교황의 대리인임을 자처하며 많은 주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의회 개막을 서둘렀고 이 때문에 숫적 열세를 감안한 네스토리우스는 에페소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또 세 번이나 참석요구를 받고도 공의회 참석을 거부했다. 치릴로는 첫 회기에서 이미 작성해 놓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결합에 대한 신앙선언문을 작성하고 198명의 참석 주교들의 인준을 받아내 믿을교리로 선포했다. 이로써 「하느님의 어머니」칭호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5일후 안티오키아의 요한 총대주교가 44명의 관구 소속 주교들과 함께 도착하자 네스토리우스는 회의에 들어가지 않고 별도의 회의를 개최해 에페소 공의회 결정을 반대하고 치릴로와 에페소의 주교 멤논을 파문했다. 이로써 공의회는 2개의 회의로 갈려 서로 비난과 공격을 퍼붓게 됐다.

쌍방의 비방이 계속되자 난처해진 테오도시우스 2세는 두 지도자인 네스토리우스와 치릴로를 체포했다. 후에 치릴로는 자신의 임지로 되돌아 갈수 있었지만 네스토리우스는 북부 이집트로 추방되었고 451년경에 사망했다.

이로써 공의회는 일단락 되었지만 동방교회 주교단의 분열은 계속됐다. 새교황 식스토 3세에 이르러 네스토리우스 사건으로 분열된 교회의 질서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일치의 길을 모색하다 433년 4월에 안티오키아 측에서는 네스토리우스 사상의 단죄를 승인하고 알렉산드리아는 치릴로가 안티오키아 측에서 작성한 신조를 받아들임으로써 합의가 이루어졌다.

네스토리우스의 이단 사상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에페소 공의회 이후 네스토리우스 지지자들은 페르시아로 피신하여 교회를 세웠고 성실한 수도생활과 열성적인 포교활동으로 인도, 티벳, 중국까지 전파됐다. 중국에서는 위대한 종교, 빛나는 종교라는 뜻으로 경교(
景敎)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융성했었다.

 

위 내용은 2000년 3월부터 가톨릭 신문사에서 기획기사 '세계 교회사 100대 사건'의 내용을 발췌하여 마리아 센터에서 재 편집하여 홈페이지에 기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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